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덴마크-노르웨이 왕국 (문단 편집) ===== 반(反) 스웨덴 동맹 결성 ===== AD 1697년 스웨덴의 칼 11세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칼 12세]]가 불과 14살의 나이에 스웨덴 왕위를 이어받자 이를 기회로 크리스티안 5세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의 종주권을 되찾기 위한 전쟁을 다시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덴마크 해군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육군도 주로 용병으로 구성되었지만 전투 수행능력은 상당히 강화된 상태였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5세가 AD 1699년 8월 사냥 도중에 불의의 사고로 사망하면서 그의 장남인 프레데리크 4세가 덴마크-노르웨이 왕위를 계승하고 스웨덴과의 전쟁도 함께 이어받게 되었다. 그리고 덴마크, 작센 및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루스 차르국 간에 반스웨덴 동맹이 결성되었다. 덴마크가 스웨덴과의 전쟁을 준비할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아우구스트 2세]]와 루스 차르국의 [[표트르 1세]]도 [[스웨덴 제국|발트 스웨덴]]의 발트해 영토를 넘보고 있었다. 본래 작센 선제후였던 아우구스트 2세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귀족들의 선거로 군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왕권이 약했던 만큼 스웨덴령인 리보니아를 자신의 [[베틴 가문]]의 영지로 삼아 왕권을 강화시킬 야심을 품고 있었다. 또한 루스 차르국의 표트르 1세는 서유럽식 개혁을 추진하면서 발트해를 통한 교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예전에 스웨덴에게 빼앗긴 [[잉그리아|잉에르만란드]]를 되찾고자 하였다. 이러한 3개국의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지자 AD 1699년 11월 루스 차르국 [[모스크바]] 근교에서 '프레오브라젠스코예 조약(Treaty of Preobrazhenskoye)'이 체결되고 덴마크, 작센 및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루스 차르국 간의 반(反) 스웨덴 동맹이 결성되면서 대북방전쟁이 시작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